sermon
요21: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21: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2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21: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21: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본문은 요21장입니다. 요21장은 어떤 장인가요. 복음서가 사실 요20장으로 끝나는 것인데, 후에 덧붙여진 것입니다. 성경을 더하고 뺀다는 것은 너무도 두려운 일이고 불경스러운 일인데 그런데도 덧붙여졌다는 것은 그만큼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 이 안에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고 두고 묵상하고 붙들고 살아야할 주제가 이 안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두가지, 선교와 목양에 관한 것입니다. 즉, 주님의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일과 또 기르는 일입니다. 우리 삶의 목적이 있다면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입니까. 무엇을 위해 우리가 일하는 것입니까. 생명에 관하여 우리가 깊은 관심을 갖고 살아야합니다. 한 영혼을 찾아 세우는 일. 그 속에서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 안에 우리 또한 생명을 얻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21: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지금 시몬 베드로는 어떠한 자리에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그는 크게 뉘우치고 돌아왔습니다. 주님을 부인했던 쓰라린 과거가 있었지만 주님의 큰 사랑을 깨닫고 예수 공동체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돌아와서 그는 무엇을 했습니까. 여전히 영혼구원을 위해 그는 선교의 현장에 나갔다는 것입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수제자 베드로가 솔선수범하고 이어 다른 제자들도 따라 나갔습니다.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그런데 그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빈그물입니다. 제자들의 삶에 열매없음으로 인하여 지치고 피곤한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눅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눅5장]은 예수님이 처음으로 제자들을 부르실 때의 장면입니다. 처음 부름받을 때나, 또 한 세월이 흐른 뒤에 큰 일을 겪고 난 이후에나, 그들의 삶에 이같이 동일한 곤고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열매없음으로 인하여 그들 삶이 무료한 일상성에 빠져 있는 모습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은 일차적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던져주는 것입니까. 우리 삶이 진실로 전도의 문제에 관하여 깊은 관심이 있어야하고, 여기에 가장 중요한 삶의 초점을 두고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던지 이것이 가장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제자된 자들안에 또한 우리들 안에 전도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새로운 사람들 많이 만나고 가르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엉뚱한 것에 빠져 있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다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교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많은 사람 전도하고 싶고 가르치고 싶은 것입니다. 물질로 섬기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많은 돈을 벌어서 그 일에 지원하고 싶은 것입니다. 마음은 누구보다 그걸 원하는 것인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사람이든 돈이든 마음처럼 얻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제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눅5: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5: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요21:3]과 흡사한 정황입니다. 제자들이 처음 부르심을 받을 때, 밤이 새도록 열심히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안 잡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속에는 두가지 우리 삶에 늘 열매가 없는 이유, 전도가 안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이유가 무엇입니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주님의 말씀속에, 우리가 깊은데로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불신과 불안이 있고 마음의 멈칫거림이 있어서 도전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해도 안된다는 인본주의적인 생각에 가로막혀 있어서 안 나갔다는 것입니다.
‘깊은 바다’가 상징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가보지 않은 곳’, ‘해보지 않은 일’, ‘내가 말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전도하는 사람은 전도의 현장에서 늘 이것과 싸웁니다. 저 사람에게 말을 걸면 받아 줄까. 얼굴이 험상궂다. 강퍅하다. 말하고 상처받으면 어떡하나. 그래서 그냥 지나쳐버립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무리하게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어떡하나. 다른 사람도 해서 실패했는데 나 같은 사람은 더더욱 실패하지 않겠는가. 그러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 생각속에 내 좁은 삶의 반경속에서만 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깊은 데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크게 발전하는 해외 선교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세계 금융의 도시 한복판에 귀한 사역지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나와서 아무것도 없이 처음 그곳을 시작할 때 어땠을까요? 너무도 큰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신 ‘깊은 곳’ 이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깊은 곳에 나아가는 도전을 통해 지금은 세계선교의 중심이 되는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믿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전략이나 방법론이 아닌, ‘믿음으로 도전하라’는 메시지만 거듭 듣고 왔습니다. 왜냐하면 전략이나 방법론은 상황마다 천차만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정신을 우리가 배워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잘 할 수 있고 잘 이룰 수 있다고 믿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의 증거에 저는 전율을 느끼고 감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꾸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우리안에 이런 역사가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믿음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우리가 더욱 담대히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빈 그물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자신안에 믿음이 없어서 우리안에 먼저 위축이 되고 우리안 안에 먼저 부정적인 결과를 상상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가지 빈그물의 이유, 우리 삶에 열매없음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주님의 말씀속에, ‘그물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순종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떨어질 때, 그것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가지 믿음이 없음과 순종하지 않음. 불신과 불순종의 문제입니다. 우리 안에 항상 이 두가지 문제로 인하여 우리 삶이 풍요롭지 못하고 메마르고 지칠 수 있는 것입니다.
최근 남미에 있는 사역지에 큰 무리들을 한꺼번에 전도한 분의 이야기를 여러분 들어셨을 것입니다. 그 분이 어느날 갑자기 좋은 사람을 만나서 큰 일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순종하여서 하나님 앞에 약속한 자기 삶의 기준을 철저히 지키고 살았다고 합니다. 가령 하루에 최소한 몇시간은 전도를 한다던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몇 명을 만난다던지. 어디를 가도 이 면에서는 엄격하고 철저한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 말씀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는데, 정말로 가서 그물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놀라운 기회가 와서 그것을 붙잡게 된 것이었습니다.
우리 안에 어떤 모습이 있습니까. 다들 주를 위해 열심히 산다 하지만 실상은 그리 살지 않는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속에 ‘네가 경건의 모양은 가졌으나 그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고 말했습니다. 믿는 자들이 경건한 모양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삶에 능력은 없습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안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할 의지가 안생깁니다. 무언가를 할 힘이 없습니다. 지금은 내 자신도 건사하지 못하고 내 자신의 문제도 많습니다. 그것도 못하는데 무슨 남을 전도하고 더 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맞는 말입니다. 나도 온전치 못한데 누구를 더 온전케 할 수 있겠습니까. 나도 못나고 추한데 무슨 더 큰 세계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베드로를 주께서 부르시고 사용하실 때, 그는 어부였습니다. 매일 나가는 바다에 나가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고단한 삶을 사는, 그 밑바닥의 미천한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런 자에게 다가가셔서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시며 그를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어부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그의 삶의 질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전혀 다른 차원으로 그를 끌어올려 주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무식하고 아무 배운 것 없는 어부가 무슨 누구를 전도하고 가르쳐낸다는 말입니까.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자기부터 온전해지고 자기부터 가르침을 잘 받아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깊이 생각해 봐야할 것은, 그런 우리안의 못나고 추한 모습이 있다할지라도 주님은 항상 우리 상상 이상의 더 큰 차원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어떠한 실패와 좌절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위대한 삶의 비약의 순간을 주님은 맞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눅5:5] 다시 읽어보세요.
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내 생각대로 살아서 실패하고 좌절하고 아무 열매없이 살았지만, 주님은 그것을 아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내가 얕은 곳에서도 못하고 내가 조그만 것도 열매맺지 못하고 그것조차도 항상 실패했는데, 주님은 그것을 아시는데도 더 깊은 곳에 나가서 잡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우리의 능력대로 이끄시는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 안에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네가 네 형편이 그런데도 믿고 순종하겠느냐?’ 라는 물음과 함께요. 오늘 수제자 시몬 베드로의 말을 붙들어야합니다.
눅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5:6 그렇게 하니
베드로는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서 믿고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제자의 훌륭함, 위대함입니다.
5: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것이 베드로가 경험한 기적입니다.
오늘 본문 요21장에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아니, 같은 이야기지만 좀 다른 것이 있습니다. 뭐가 다른가 하면, 눅5장에서 한단계 더 진전된 것이 있습니다.
요21: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21: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여기 기이한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같이 계신데도 제자들은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알지 못했다는 것은 뭘 말해주는 것일까요. 제자들의 삶이 그들과 함께 계신 주님을 믿지 못하고 자기의 능력과 지혜를 의뢰하고 살았던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능력의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늘 실패하고 늘 빈그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제자들에게 주께서 다가오셔서 넘치는 풍요의 세계를 다시금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요2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21: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눅5장]에서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여기는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라’ 고 하십니다. 왜 오른 편일까요. 옛날 처음 부름받을때에 큰 풍요의 기적을 체험했을때에 주님 가라 말씀하신 ‘깊은 데’가 어쩌면 왼편이었을지 모릅니다. 거기서 많은 고기를 잡았듯이, 이제는 다른 편으로 가 보라는 것입니다. 그 쪽만 있는게 아니라 이번에는 다른 쪽에도 가 보라는 것입니다.
이 말속에는, 늘 우리안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까. 우린 늘 한쪽 편만을 생각하고 늘 그러한 치우쳐진 생각속에 갇혀서 사는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가 아니면 ‘저기’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길’이 아니면 ‘저 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는 만가지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새로운 길이 있음을, 또 내 지각을 넘어선 다른 영역이 있음을 늘 생각하면서 새로운 가능성들을 언제나 열어두고 살아야합니다.
지금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하시고,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정말 행복한 그림입니다.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가 없더라’ 라는 것입니다. 마치 교회가 크게 부흥되었는데 사역자가 부족한 정황이 연상이 됩니다. 갑작스레 수많은 영혼들이 몰려와서 그것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교회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이런 행복한 꿈을 꾸고 가는 것입니다. 물론 사역자들도 많이 세워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모두가 이런 꿈을 꾸고 살기 바랍니다.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꿈을 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꿈을 속히 이루려 합니다. 무엇으로 이룰 수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두가지 중요한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내 삶의 경계를 넘어서 늘 도전하는 정신을 가져야합니다. 내가 가보지 못한 것 시도해보지 못한 일, 큰 일도 해보려고 해야한다. 그 곳에 풍어(?漁)의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물을 열심히 내려야합니다. 순종해야합니다. 전도도 말을 직접 걸어봐야합니다. 정말 구체적으로 몇십명 몇백명 말걸기를 목표를 정하고 해야합니다. 사무엘서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이 있듯이,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 기뻐하실 예배가 되자면 우리 삶이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드리는 것이 되어야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삶에 힘이 생기고 또한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요21: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21: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7절은 많은 물고기를 잡은 이후 수제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우리에게 얘기해주는 것일까요? 주의 말씀에 순종해서 많은 물고기를 잡은 베드로의 참으로 진지한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보다 성숙한 삶의 자세입니다. 큰 결실로 인해 크게 놀라 기뻐하며 뛰는 모습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주께서 행하신 일임을 알고 주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임을 알고, 더욱 진지하게 주님을 따라 주어진 길을 가는 이 아름다운 수제자의 모습입니다. 이 또한 우리 모두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이 주님의 말씀속에 담겨있는 믿음과 순종의 교훈을 우리안에 다시금 되새겨서 모든 것이 충만하고 모든 면에서 풍요로운 세계를 함께 열어나가는 저와 여러분의 귀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