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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볘배

주의 발치에 앉아

눅10:38-42    날짜 : 2015-08-16    설교주제 : 주의 발치에 앉아

눅10: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10: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10: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제목은 ‘주의 발치에 앉아’ 발치는 발끝쪽에 앉아 이런 말입니다. 수련회가 다가왔습니다. 올해는 며칠 늦게 날짜가 잡혔는데,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한해 모임중에 가장 중요한 모임 중의 하나이니 잘 참석하시고 또한 모두가 큰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자매입니다. 마르다가 언니이고 마리아가 동생이입니다. 어느날 이 자매의 집 근처에 예수님이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께 식사를 잘 대접해 드리려고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밥상을 차리고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뭐하고 있었습니까. 밥상차리는 걸 돕는게 아닙니다. 주님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만 듣는 것입니다. 마르다가 굉장히 바쁘게 되었는데, 동생이 돕지도 않고 따로 말씀듣고 있으니 맘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바쁘고 힘든데 동생이 저를 도우라 해주세요.’ 주님의 대답이 무엇인가요. ‘그래 마리아야 너희 언니  힘드니까 좀 도와주라’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뜻밖의 말씀을 주십니다. ‘너가 많은 일로 분주하고 걱정하지만 한가지만 해도 충분하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선택했으니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마르다와 마리아. 하나는 먹을 것을 준비하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주의 말씀을 듣는 사람입니다. 이는 교회안에 두가지 영역을 말해주기도 하고 우리 삶의 두 면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먼저는 교회 안에 가장 중요한 영적인 일이 있습니다. 말씀듣고 기도하고 예배가 있고 바이블 아카데미 같이 말씀을 교육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일이 있습니까. 육적인 일이 있습니다. 영적인 일들을 지원하는 모든 것들. 물질로 섬기고 육체로 섬기고 하는 모든 일들.


또 우리 삶속에서 볼 때도 두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먼저 일상적으로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일차원적인 일들, 일하고 돈벌고 자녀들 먹이고 기르고 하는 모든 것들이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런데 비상적인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하는 우리가 주님을 직접적으로 만나고 교제하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 볼 때, 이 말씀의 가르침을 바르게 잘 이해하고 살아야합니다. 마르다의 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또 얼마나 필요한 것입니까. 일차원적인 것들에 관한 큰 관심이 우리안에 있습니다. 물질이 궁핍해지면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삶이 고단해지고 어두워지고 시험들기도 합니다. 주님이 마르다의 섬김을 책망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의 일의 중요성을 부정하신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근원적인 것에 관하여, 궁극적인 관심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주의 발치에서 말씀을 듣는 일, 기도하고 하나님 은혜를 깊이 묵상하고 깨달아 가는 삶. 이것이 우리 삶속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속에 내가 섬기는 이유, 내가 돈을 벌고 일하는 이유,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이유와 목적을 상실하고 일할 때, 삶의 위기가 찾아올뿐 아니라 심지어 내가 애써 노력하고 섬기는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마4:1-11]에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일 처음 받으신 시험이 무엇입니까. 물질시험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이 떡되게 하라’ 이 사단의 시험을 무엇으로 이기십니까. 하나님 말씀으로 이기십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이는 [신8:3] 말씀입니다. 여기 ‘말씀으로 산다’는게 뭘 말하는 것입니까. 그건 내가 사는 이유, 그 목적을 알고 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것 때문에, 그것을 위해 내가 먹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지, 그 우선순위가 분명해야합니다. 


[마6:25-34]에 예수님이 너무 잘 가르쳐주셨습니다. 몸을 위해 옷을 입는 것이고 목숨을 위해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이게 거꾸로 될 때 우리 삶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마실까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공중의 새들도 먹이시고 들에 핀 꽃도 하나님이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우리 인생의 걱정들 중 대 부분을 차지하는 게 무엇입니까. 물질적인 것 돈과 관계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열심히 일하다가 혹은 돈만 벌다가 뭘 잃어버리기 쉽습니까. ‘내가 왜 돈버는지, 내가 왜 일하지, 내가 왜 사는지’ 이것을 놓쳐버릴 수 있습니다.


마치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키를 잡는 사람이 배를 잘못 이끌어서 배가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열심히 갔는데 엉뚱한 섬에 정박을 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이처럼 당혹스러운 때가 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속에 마르다와 마리아의 모습을 물리학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신앙의 ‘구심력’과 ‘원심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심으로 모이는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큰 원을 그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운동선수 중에 무거운 것 갖고 돌면서 멀리 던지는 운동이 있습니다. 중심에 모아지는 힘이 강해야 멀리 던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중심에 하나님 말씀이 깊이 뿌리내리고 그 말씀이 주는 은혜를 충만히 우리가 받고 살 때, 우리 통해 이뤄지는 역사가 커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통해 큰 일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마리아의 모습이 말해주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오늘 말씀 더 깊이 보기 위해, 본문의 마리아는 어떤 여인인지 우리가 잘 알필요가 있습니다. 마리아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요12:1-8]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리아와 같은 여인입니다. 내용을 보면 마리아는 지극히 값비싼 향유옥합을 주께 깨뜨려 부었던 여인입니다. 오늘날로 보면 대략 수천만원 되는 기름을 주님께 다 부어드렸던 여인이었습니다. 그 행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주께서 나같은 죄인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시고 생명까지 다 부어드리신 그 놀라운 사랑을 여인이 알아보고 응답한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입니다. 여인은 향유를 눈물로 주님께 다 부어드렸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에 대해 뭐라고 말했습니까. 요한복음에는 제자들이라 하지 않고 가룟 유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향유를 왜 그렇게 허비했는가. 그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면 얼마나 많이 나누어줄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유다의 말이었습니다. 매우 실용적인 사고가 담긴 말입니다. 매우 합리적인 사고를 기반한 말입니다. 정말로 반박하기 힘든 말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고 요한은 말했습니다. 돈궤를 맡아서 그것 훔쳐갈려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실용적인 사고가 분명히 필요한 것이지만, 이런 면에서 위험한 것입니다. 사랑을 돈으로 계산하려고 하고 거룩한 것을 값을 매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유다가 예수님도 은삼십냥이라는 값으로 팔아넘긴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이런 유다의 이해타산적인 사고에 관해 늘 깊이 보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아야합니다. 그런데 그런 유다와 달리 마리아는 어떤 여인이었습니까.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주의 은혜에 감격하여 그 값비싼 것일지라도 다 쏟아부을 수 있었던 여인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속에 주의 발치에서 말씀만 듣는 마리아의 모습과 같은 세계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저 말씀에만 푹~ 빠져있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해 자기 시간과 물질을 다 쏟아부을 수 있는 여인의 모습입니다. 마르다가 볼 때는 마리아가 매우 비현실적이고 거기에 시간을 거기다 쏟는 게 낭비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이것이 우리 모든 것을 지탱케 합니다. 공동체의 모든 일들이 여기서 다 중심이 되어 잡아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일요일에 예배드리러 나왔습니다. 주일성수는 영적전선에서 정말 무너져서는 안되는 최후의 보루(堡壘)와 같습니다. 우리가 예배만 잘 드리고 살아도 신앙이 건강해집니다. 실용적인 생각을 해볼 때, 일요일 이 시간에 잠을 더 잘 수도 있고 산과 들로 나들이를 갈 수도 있습니다. 예배도 요즘 스마트폰 다 듣고 볼 수 있으니까, 길가면서도 예배 다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실용적인 사고가 우리 삶의 위기를 맞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 몸과 마음을 다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아 와서 구별된 곳에서 정성을 다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그 가운데 거룩을 체험하고, 그 가운데 물질보다 더 귀한, 값비싼 은혜를 받아서 우리가 힘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도 보면, 이 시대를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라고들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돈만 섬기고 그것에만 골몰해서 산다고 생각해보면 끔찍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에 ‘돈을 사랑함이 만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심이 가득해서 세상천지가 온갖 죄악으로 뒤덮혀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직까지 멸망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거룩한 무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바다가 썩지 않은 것이 3% 소금때문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산위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세상의 소금이라[마5:13]’ 이 말씀은 곧, ‘너희들 때문에 세상이 부패하지 않고 건강해질 것이다’ 라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도 건강해질 수 있는 것은 주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일을 중요하게 여길 때 그렇습니다. 열심히 일하다가 정신없이 살다가도, 모든 것을 멈추고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내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내 영적인 생활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수련회가 그런 것입니다. 너무도 중요한 시간입니다. 이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창25:27-34] 를 보면 이삭의 두 아들이 있습니다.  에서는 사냥하기를 좋아하고 야곱은 집안에 있기를 좋아했습니다. 사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이는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가족의 먹을 것을 구해다 오는 것입니다. 정말로 필요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만 가정이 지탱되는게 아닙니다. 야곱은 조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안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게 말해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성경은 먹고 마시고 자는 일상적인 기록이 아닙니다. 에서와 야곱의 성격차이 기질차이를 얘기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더 깊은 세계를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야곱이 장막안에 거했다’는 것은,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으로 내려온 신앙의 유산, 그 깊은 이야기들에 관해서 늘 새겨듣고 그것을 이어가려했던 야곱의 뿌리 깊은 삶의 모습을 얘기해주는 것입니다. 그런 그였기에 장자의 권한을 결국 얻어서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는 자가 된 것입니다.


야곱안에는 자신이 배가 고파도 팥죽을 팔고 장자권을 사는 지혜. 많은 사람들이 간교함으로 빼앗았다 말하지만, 성경을 읽어보면 정말로 정당하고 합법적인 절차로, 그는 팥죽을 팔고 장자권을 산 것이입니다. 에서는 어땠는가. 배고파 죽겠다고 해서 장자권을 팥죽에 팔아버렸던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 복을 잃어버릴 때는 우리가 변명할 수 없는 과정을 통해서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창25:34]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더라’ 이는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에서가 팥죽을 장자권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더라’ 혹은 ‘에서는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더라’ 혹은 ‘에서는 돈을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았던 자였더라’ 결국에 에서는 장자권을 잃어버림으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뼛속깊이 되새겨야할 역사의 깊은 교훈입니다.


오늘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보면, 마르다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너무도 헌신적으로 주를 섬기는 아름다운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쪽으로만 치우치다보니까 마음이 분주해 진 것입니다. 동생을 미워하게 되기도 하고, 자기가 무엇을 위해 섬기고 있는지 그 동기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일상을 살면서 우리안에 이런 모습은 없습니까. 열심히 일만하다가 몸과 마음이 지쳐서 주님이 아닌 다른 이의 부족함만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마르다와 같지 않습니까. 내 삶이 일에만 치우쳐져서 균형을 잃어버린 상태는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눅10:41] ‘마르다야 마르다야~’ 성경에 이름을 두번 부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두 번 부르신 음성속에는, ‘마르다야 너의 섬김이 너무도 아름답고 귀하단다.’ 이런 주님의 마음이 담겨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안타까움은 ‘네가 많은 일을 하면서 너 자신을 잃어버렸구나. 그럼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한가지라도 충분하고 마리아의 귀한 면을 본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주시는 말씀, ‘마리아는 좋은 것을 택했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이 안에는 말씀의 우선권, 영적인 것의 우위성을 얘기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삶이 이 자리를 다시 찾아가야합니다. 마리아와 같이 일상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만을 깊이 상고하면서, 그로 말미암아 주시는 은혜에만 흠뻑 취하는 그런 황금같은 기회를, 여러분 꼭 붙드시고 빼앗기지 않는 지혜로운 인생을 사시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 바랍니다.

날짜 제목 본문말씀 설교자 VOD MP3 TEXT
2015-09-20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16:13-20 장시몬 목사
2015-09-13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13:21-22 장시몬 목사
2015-09-06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요21:3-7 장시몬 목사
2015-08-23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12:7-10 장시몬 목사
2015-08-16 주의 발치에 앉아 눅10:38-42 장시몬 목사
2015-08-09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몬1:16-19 장시몬 목사
2015-08-02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1장 16-17절 장시몬 목사
2015-07-26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막2장 1-5절 장시몬 목사
2015-07-19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롬1장 28절; 계3장 20절 장시몬 목사
2015-07-12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롬5장 20절 장시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