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글쓴이 : 안디옥…
 

주의 뜻을 따라 선한 믿음의 싸움을 할 때에, 말할 수 없는 희생과 눈물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다윗에게 사울의 죽음은 그러했습니다. 적으로서 미워하고 증오하면서 치혈한 싸움을 한 것 같지만, 실로 다윗은 그의 죽음을 원치 않았고, 그의 죽음 앞에 슬피 울었습니다.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을 인하여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삼하1)'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자를 어쩌하여 내가 칠 수 있느냐'라며,
사울을 죽이자며 분노하는 자신의 장수들에게 이런 기이한 신앙의 세계들을 가르칩니다. 정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붙들고 사는 자였기에, 그는 위대한 왕국을 세우고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다윗이지만, 엄연히 피는 흘려졌고, 이로 인한 고통과 눈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이것을 가지고 저주하며 모욕합니다.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삼하16)' 
 
사울의 죽임의 피값으로 이제 너는 너의 아들 압살롬에게조차 좇기는 신세가 된것이 아니냐! 피값을 당하라! 라며 저주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저 거짓을 말하는 자를 죽이라! 저 모욕하는 입을 닫게 하라'가 아닙니다. 
 
다윗은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 두라(삼하16)' 
 
참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세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억울한 모욕속에서 감정적이 되거나, 쉽게 다른 이가 거짓되고 자신의 옳음을 빨리 증거해야 할거 같은데, 다윗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놔두어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아니냐! 
 
그 말할 수 없는 저주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그가 가진 힘과 능력으로 바로 그 모욕하는 자를 죽일 수 있음에도,  저로 저주하게 놔 두라고 합니다. 어찌 그리 할수 있습니까?
이 넓고 큰 마음, 이것이 있었기에, 싫고 피하고 싶고 억울한 순간속에서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바라보고, 그 속에 겸손하고 잠잠하였던 다윗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신복들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삼하16)' 
 
우리의 자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주의 거룩한 전쟁 가운데 다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들, 눈물들, 피흘림들, 이로 인해 오는 많은 안타까운 일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한 세계를 오늘 우리가 다윗에게 배우기 원합니다. 
 
다른 이는 뭐라고 하고, 설령 오해하고, 나를 나쁘게 악평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하나님은 아시고, 그 저주로 인하여 오히려 나에게 선을 갚으신다는 세계입니다. 공평의 하나님, 저주가 쌓일때, 다른 한편에 선을 쌓으시는 하나님이심을,
이 하나님이 계시기에 오늘 우리는 평안할 수 있습니다. 
 
주의 거룩한 전쟁 속에 낙담하지 않고, '저가 저주하게 놔두라, 하나님이 나의 사정을 들이시고 갚으 시리라!' 이 크고 높은 세계를 바라보며 싸워가는 우리가 다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