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복음 통하지 않고서는, 기독교와 교회 말할 수 없다
 글쓴이 : 안디옥…
 
[크리스찬북뉴스 서평] 어린아이 같으나 화강암 같은 사람
J. C. 라일 J. C. 라일
이안 머레이 | 정상윤 역 | 복있는사람 | 396쪽 | 17,000원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인생을 불사르며 살았던 사람의 전기를 보면, 나도 어느새 가슴이 뜨거워지고 감격이 된다. ‘나는 왜 이 정도 밖에 못 사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를 보게 된다.

한없이 울고 싶어지기도 하고, 한없이 나약해지기도 한다. 그들처럼 자기를 던지지 못하는 두려운 나를 보며 자책도 하고, 그렇게 헌신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에 울분이 터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열악한 환경을 이기고 어둠의 권세를 향해 저항할 수 있게 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 무엇이 믿음의 선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복음을 지켜내고 진리를 수호하며 교회를 세우게 하였는지 고민해 본다.

필자가 존 라일을 만난 것은 십몇 년 전 그의 책 <거룩>을 통해서다. 그것은 단순한 믿음만 강조하는 교회와 안일한 삶을 사는 게으른 성도에게 큰 교훈을 주는 나팔이었다.


필자는 존 라일의 전기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올해 초부터 기대하고 있었다. <거룩>을 통해 받은 인상과 감동이 아주 컸기에, 그의 삶이 궁금했었고 그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마음과 신학이 궁금했다.

이제야 그의 전기를 볼 수 있었는데, 그의 삶의 배경과 시대적 환경을 알 수 있었다. 세 번의 결혼 중 두 번이나 아내와 사별하고 어린아이마저 먼저 보내야했던 그의 괴로움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또한 병상에 십년 이상 누워있던 두 번째 아내를 지극히 간호했던 그의 사랑은 눈물겹고, 몰락한 아버지의 빚을 갚아가는 그의 모습은 애처롭기도 했다.

무엇보다 신학의 몸체 안에 뼈대가 없는 해파리 성직자가 많다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그는 광야에 홀로 선 선지자처럼 선포한다. 또한 형식적으로 굳어 있는 국교회와 부패한 가톨릭을 향해 교회의 개혁과 회심을 큰 소리로 외친다.

하나님의 부흥을 잃어버린 세대를 향해 그 역사적인 부흥을 회복하길 간절히 원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돌과 같은 마음을 부시고 강철 같은 심령을 녹일 수 있다.

필자는 그의 생애를 요약, 비교, 분석하기보다 전기를 보면서 느낀 점을 세 가지로 적고자 한다.

먼저 그는 자신에게 설교하는 자였다. 라일이 훌륭하고 위대한 설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을 준비하며 자신이 먼저 망치로 부서지고 깨지고 살아났기 때문이다.

위대한 말씀이 될 수 있는 것은, 전하는 자에게 큰 역사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피상적이고 가식적인 설교는 하나님의 역사를 가져올 수 없고, 영혼을 속이는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이다.

라일은 그리스도가 드러나지 않는 설교를 멸시했다. 설교를 통한 회심과 변화와 성령님의 역사를 굳게 믿었다.

필자는 오늘날 이러한 그의 설교관을 보며 꼭 필요한 핵심이라 여겼다. 한 번의 설교를 위해 우리는 얼마나 묵상하여 변화된 나를 통해 선포하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예배를 만들어 설교를 하는데,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과연 교회를 살리고 영혼을 변화시키는지 의심만 쌓인다.

라일은 목회자들이 공적 사역이 많아지고 사적 사역이 줄어드는 것을 심히 염려스러워했다. 사적 사역이란 말씀연구와 독서와 기도를 말하는데, 당시에도 본질적인 시간은 축소되고 다양한 외부 활동이 목회자를 서서히 죽여가고 있었다.

강단에 오르기 전 항상 자신에게 먼저 설교를 통과시키고, 회중을 만나기 전 그리스도를 먼저 만났던 그의 모습은 충분한 경고가 된다. 왕성한 그의 글쓰기는 늘 자신에게 말씀을 먼저 선포한 흔적이라 보여진다.

그리고 라일은 성화를 강조한다. 라일의 시대에 교회는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믿음이 유행했다. 무조건적 믿음이 교회의 팔다리를 제거하였고 성도의 영혼을 게으르게 했다.
온전한 믿음은 성화와 거룩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대는 믿음이 변질됐고, 성화는 실종됐으며, 거룩은 상실됐다. 교회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착각이 지배했다.

이런 교회를 향한 라일의 가르침은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앞 세대에 일어난 하나님의 부흥을 이어가고 회복하는 것이었다.

라일은 청교도를 좋아하고 그들의 책들을 읽었는데 믿음의 본질을 회복하길 원하였다. 확률에 의한 믿음과 자기 체면에 의한 믿음이 유행하는 시대에 성화와 거룩을 낳는 믿음은 강조돼야 한다.

율법을 복음과 동일하게 여기는 그의 가르침은 성도의 거룩을 지속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율법을 통한 죄의 각성과 회개를 강조했고, 이런 율법은 복음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라일은 예배를 강조한다. 그가 미신과 형식과 부도덕에 빠져 있는 예배를 비판한다. 그러한 예배는 교회를 살릴 수 없고 영혼을 깨울 수 없다.

성도는 예배를 통하여 살아있는 하나님을 만난다. 세상의 정신과 가르침을 부정하고 영혼의 위치와 자리를 바르게 세운다.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분명한 푯대를 확인한다.

예배는 하나님을 목격하는 자리이고 귓속에다 큰 확성기로 하나님의 음성이 울려 퍼지는 시간이고 심령에 문자를 새기는 시간이다.

그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홀로 영광받아야 함을 가르친다. 다른 것들이 그분의 영광을 대체할 수 없다.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예배가 당시에도 유행했는데, 그러한 인간의 본성을 그는 경계한다.

어떻게 예배하느냐는 어떻게 사느냐와 연결된다. 기계적인 예배와 습관적인 예배는 자신의 심령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인간과 세상에 맞춘 예배는 경건과 경외와 거룩을 훼손할 것이다.

거짓 예배를 폭로하고 참된 예배를 추구해야 한다. 훌륭한 예배는 개인의 신앙과 영혼에 큰 유익이 된다.

결론으로 라일의 생애를 보며, 그는 십자가와 복음에 깊이 젖어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대세를 따르지 않고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을 홀로 지켜갈 수 있었고, 하나님의 부흥을 이어가길 원했던 것은 십자가의 정신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직 인간을 구원하는 방법은 십자가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변절할 수 없었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오직 이것을 통해서만 모든 인간과 인류를 구원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교회는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은 백성들이 모인 곳이다. 그러나 라일이 볼 때 너무 비극적인 교회이고 안타까운 상황이다. 십자가와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던 것이다. 오늘날 그가 외친 복음과 설교를 보며 우리의 교회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십자가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소수인 것 같다. 그 시대에 그가 전한 설교와 그가 쓴 메시지를 다시금 내 마음에 먼저 새겨본다. 십자가와 복음을 통하지 않고서는 기독교와 교회를 말할 수 없기에….

방영민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서현교회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http://chtoday.co.kr
기사 :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18471